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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 - 로마를 손에 넣고, 로마에게 죽은 사람 본문

Books & Insights (북 리뷰)

카이사르 - 로마를 손에 넣고, 로마에게 죽은 사람

slowblooms 2026. 5. 7. 02:20

Books & Insights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시리즈 #5

카이사르

로마를 손에 넣고, 로마에게 죽은 사람

📚 연재 목차

  1.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란 무엇인가
  2. 테세우스
  3. 로물루스
  4. 알렉산드로스
  5. 카이사르 ← 현재 편
  6. 정복자의 그릇과 파국
  7. 페리클레스
  8. 키케로
  9. 영웅의 성공과 몰락
  10. 영웅전이 오늘날에도 읽히는 이유

스페인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젊은 시절,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로스의 동상 앞에서 울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나이에 이미 세계를 정복했는데, 자신은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플루타르코스는 이 장면을 기록하며 말한다. 그 눈물 속에 카이사르라는 인간의 전부가 담겨 있다고.

✦ ✦ ✦

해적에게 잡힌 귀족

율리우스 카이사르(기원전 100~44년)는 로마의 명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출발은 화려하지 않았다. 젊은 시절 그는 에게해를 항해하다 해적에게 납치되었다. 해적들이 몸값으로 은화 20탈란트를 요구하자, 카이사르는 비웃었다. "나 같은 사람의 몸값이 고작 그것밖에 안 되느냐. 50탈란트를 요구해라."

그는 억류된 38일 동안 해적들과 농담을 나누고, 자신이 직접 쓴 시를 읽어주었다. 시에 반응이 시큰둥하면 "이 무식한 야만인들"이라고 혀를 찼다. 그리고 농담처럼 말했다. "내가 풀려나면 너희를 모두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겠다." 몸값이 지불되고 풀려나자, 그는 군함을 빌려 해적들을 쫓아가 실제로 모두 처형했다.

"카이사르는 위협을 농담처럼 했고, 농담을 실제로 했다. 그것이 그를 두려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 플루타르코스의 시선

정치가로의 부상

카이사르는 뛰어난 웅변가였고, 탁월한 정치 공학자였다. 그는 민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대규모 공공 행사를 열고 막대한 빚을 졌다. 로마 원로원의 보수파 귀족들이 그를 경계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이미 민심을 손에 쥐고 있었다.

1차 삼두정치기원전 60년, 카이사르는 로마 최고의 군인 폼페이우스, 최고의 부자 크라수스와 비밀 동맹을 맺는다. 세 사람이 힘을 합치면 원로원도 막지 못할 것이었다. 이것이 로마 공화정의 실질적인 균열의 시작이었다.

갈리아 원정기원전 58년부터 8년간, 카이사르는 갈리아(오늘날의 프랑스 일대)를 정복했다. 100만 명이 죽고, 100만 명이 노예가 되었다고 기록은 전한다. 카이사르는 이 원정을 직접 기록한 『갈리아 전기』를 남겼다 — 역사상 가장 탁월한 자기 홍보물 중 하나로 꼽힌다.

루비콘을 건너다

기원전 49년 1월,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 앞에 섰다. 로마법상 장군은 군대를 이끌고 이 강을 건널 수 없었다. 건너는 순간, 그것은 반역이었다. 원로원은 그에게 군대를 해산하고 혼자 로마로 돌아오라고 명령했다.

카이사르는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강을 건넜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그가 그 순간 한 말은 이것이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 카이사르, 루비콘 강을 건너며 (기원전 49년)

내전이 시작되었다. 폼페이우스는 그리스로 달아났고, 카이사르는 로마를 접수했다. 1년 뒤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폼페이우스를 격파했다. 폼페이우스는 이집트로 도망쳤다가 거기서 암살당했다. 카이사르가 이집트에 도착했을 때 부하들이 폼페이우스의 머리를 바쳤다. 그는 외면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독재관 카이사르

기원전 44년, 카이사르는 종신 독재관으로 선포되었다. 로마 공화정 역사상 전례가 없는 직위였다. 그는 달력을 개혁하고(율리우스력), 도시 건설 계획을 세우고, 속주민에게 시민권을 부여했다. 개혁은 실질적이었다. 그러나 원로원 의원들의 눈에 그것은 왕정의 시작으로 보였다.

  • 기원전 49년 루비콘 도하내전 시작. 폼페이우스와의 결전.
  • 기원전 48년 파르살루스 전투폼페이우스 격파. 카이사르, 사실상 로마의 지배자가 됨.
  • 기원전 47년 클레오파트라이집트에서 클레오파트라 7세를 만남. 두 사람 사이에 아들 카이사리온이 태어남.
  • 기원전 44년 종신 독재관전례 없는 권력 집중. 원로원 내부에서 암살 모의가 시작됨.

3월 15일

기원전 44년 3월 15일 — 이두스 마르티아에. 카이사르는 원로원에 출석했다. 경고는 있었다. 점술사는 "3월 15일을 조심하라"고 했다. 그의 아내 칼푸르니아는 불길한 꿈을 꾸고 그날 나가지 말라고 애원했다. 카이사르는 웃어넘겼다.

원로원에 들어서자마자 의원들이 그를 에워쌌다. 칼이 번쩍였다. 스물세 군데 자상.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카이사르는 처음 몇 차례 저항했다. 그러다 자신을 찌르는 사람들 중 브루투스를 보았다. 그는 토가로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쓰러졌다.

브루투스와 카이사르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는 카이사르가 아꼈던 인물이었다. 내전 당시 폼페이우스 편에 섰다가 패한 브루투스를 카이사르는 직접 사면하고 중용했다. 그 브루투스가 암살자 중 한 명이었다. "너마저, 브루투스(Et tu, Brute)?" — 이 말이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남았지만, 플루타르코스는 카이사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단지 얼굴을 가렸을 뿐.

플루타르코스가 카이사르에게 묻는 것

카이사르는 왕이 되려 했는가. 플루타르코스는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 않는다. 암살자들은 공화정을 구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의 칼은 오히려 공화정의 관을 박았다. 카이사르의 죽음은 옥타비아누스(훗날 아우구스투스)가 황제로 오르는 발판이 되었다. 공화정은 그 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항목 카이사르
생몰연도 기원전 100년 ~ 기원전 44년 (향년 55세)
결정적 순간 루비콘 도하 — 돌이킬 수 없는 선택
암살자 수 23명의 원로원 의원
플루타르코스의 짝 알렉산드로스 대왕

플루타르코스가 카이사르를 알렉산드로스와 나란히 세운 이유는 분명하다. 두 사람은 닮았다. 천재적이고, 매력적이고, 멈출 줄 모르고, 결국 자신이 만든 세계에 의해 소멸했다. 다음 편에서는 이 두 정복자를 정면으로 비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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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자의 그릇과 파국

알렉산드로스와 카이사르 — 두 정복자는 왜 같은 방식으로 무너졌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