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 1 | 2 | 3 | 4 | 5 | 6 | |
| 7 | 8 | 9 | 10 | 11 | 12 | 13 |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 28 | 29 | 30 |
- everyday English
- MisoEnglish#유교철학 #Confucianism #성리학 #NeoConfucianism #인의예지 #Virtue #맹자 #Mencius #실학 #KoreanScholarship
- 인도철학 #동양철학 #인문학 #요가 #명상 #힌두교 #불교 #간디 #타고르 #정통6파 #철학공부 #마음공부 #MisoEnglish #인문학영어
- misoenglish
- MisoEnglish#철학입문 #Philosophy #정치철학 #PoliticalPhilosophy #철학공부 #정의론 #자유주의 #PhilosophyForBeginners #교육콘텐츠 #철학시리즈
- 영어회화
- 동양정치철학 #시리즈완결 #아시아적가치 #동서양비교 #유교 #민주주의 #정치사상 #인문학 #비교철학 #글로벌정치 #문화다양성 #2500년철학사
- MisoEnglish#철학입문 #Philosophy #심리철학 #PhilosophyOfMind #철학공부 #의식 #마음 #PhilosophyForBeginners #교육콘텐츠 #철학시리즈
- 영문법
- 영어공부
- 영어접속사
- MisoEnglish#철학입문 #Philosophy #종교철학 #PhilosophyOfReligion #철학공부 #신존재증명 #악의문제 #PhilosophyForBeginners #교육콘텐츠 #철학시리즈
- MisoEnglish#불교철학 #BuddhismPhilosophy #사성제 #FourNobleTruths #공사상 #Emptiness #명상 #Mindfulness #열반 #EasternWisdom
- 영국사 #영국역사 #세계사 #역사연재 #브리튼에서영국까지
- 미소잉글리시
- 감성영어
- ticketing
- 영어문법
- AirlineOpsEnglish
- MisoEnglish#도교철학 #Taoism #도덕경 #TaoTeChing #무위자연 #WuWei #노자 #Laozi #장자 #YinYang
- English Speaking Practice
- 🌿 English with Heart
- English for Korean Learners
- 토익
- MisoEnglish#한국철학 #KoreanPhilosophy #홍익인간 #Hongik #화랑도 #Hwarang #단군 #Dangun #풍류도 #ThreeKingdoms#동양철학
- 비즈니스영어
- toeic
- MisoEnglish#철학입문 #Philosophy #과학철학 #PhilosophyOfScience #철학공부 #포퓨퍼 #쿠hn #과학방법론 #교육콘텐츠 #철학시리즈
- 토익공부
- MisoEnglish#철학입문 #Philosophy #윤리학 #Ethics #도덕철학 #철학공부 #칸트 #공리주의 #교육콘텐츠 #철학시리즈
- Today
- Total
MisoEnglish
키케로 - 말로 살고, 말로 죽은 사람 본문

Books & Insights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시리즈 #8
키케로
말로 살고, 말로 죽은 사람
📚 연재 목차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란 무엇인가
- 테세우스
- 로물루스
- 알렉산드로스
- 카이사르
- 정복자의 그릇과 파국
- 페리클레스
- 키케로 ← 현재 편
- 영웅의 성공과 몰락
- 영웅전이 오늘날에도 읽히는 이유
알렉산드로스는 칼로 세계를 바꾸었다. 카이사르는 군대로 로마를 바꾸었다. 키케로는 말로 시대를 흔들었다. 그리고 결국 그 말 때문에 죽었다. 플루타르코스가 기록한 인물들 중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취약하고, 어쩌면 가장 현대적인 사람.
변방에서 온 천재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기원전 106~43년)는 로마에서 동쪽으로 약 100킬로미터 떨어진 아르피눔 출신이었다. 귀족 혈통이 아니었다. 원로원 의원 집안도 아니었다. 그는 순수하게 능력으로 로마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었다 — 로마인들이 "호모 노부스(Homo novus)", 즉 '새로운 사람'이라 부르는 첫 세대 성공자.
그 무기는 오직 하나였다. 말. 키케로는 당대 최고의 웅변가였다. 법정에서, 원로원에서, 광장에서 — 그의 연설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판결을 뒤집었고, 정치의 흐름을 바꾸었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문장은 라틴어 교과서의 표준으로 쓰인다.
"키케로라는 이름의 뜻은 '병아리콩'이다. 귀족들은 그 이름을 조롱했다. 키케로는 말했다. '내가 이 이름을 키케로 역사상 가장 빛나는 이름으로 만들겠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키케로 편
집정관 키케로 — 카틸리나 음모를 막다
기원전 63년, 키케로는 로마 최고 행정관인 집정관(consul)에 선출되었다. 귀족도 장군도 아닌 사람이 로마의 최고직에 오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임기 중 그는 생애 최대의 시험에 직면했다.
카틸리나 음모루키우스 세르기우스 카틸리나는 로마 귀족으로, 선거에서 두 번 낙선한 뒤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키케로는 첩보를 통해 이 계획을 사전에 파악했다. 그는 원로원에 출석해 카틸리나를 향해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설 중 하나를 쏟아냈다. "카틸리나여, 그대는 언제까지 우리의 인내를 시험할 것인가(Quo usque tandem abutere, Catilina, patientia nostra)?" 카틸리나는 그 자리에서 로마를 떠났다. 음모는 분쇄되었다.
원로원은 환호했다. 시민들은 그를 "조국의 아버지(Pater Patriae)"라 불렀다. 키케로는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부터, 그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추방과 귀환
카틸리나 음모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키케로는 주모자들을 재판 없이 처형했다. 당시엔 영웅적 결단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로마법은 시민을 재판 없이 처형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정적들은 이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기원전 58년, 키케로의 정적 클로디우스가 법안을 통과시켜 그를 로마에서 추방했다. 키케로는 그리스로 망명했다. 집은 불태워졌다. 그는 망명 기간 내내 편지를 썼다 — 친구들에게, 가족에게, 원로원 의원들에게. 애걸하고, 탄식하고, 자책하는 편지들. 플루타르코스는 이 편지들이 "영웅답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기록한다.
"위대한 사람도 추방 앞에서는 무너질 수 있다. 키케로의 망명 편지들은 그가 얼마나 로마를, 명예를, 인정받는 것을 필요로 했는지를 드러낸다."
— 플루타르코스의 시선
1년 반 뒤 키케로는 귀환했다. 로마 시민들이 길거리로 나와 환영했다. 그러나 이미 로마의 권력 지형은 바뀌어 있었다.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의 삼두정치가 로마를 좌우하고 있었고, 키케로의 자리는 예전 같지 않았다.
내전의 시대, 선택의 기로
기원전 49년 카이사르가 루비콘을 건넜을 때, 키케로는 선택해야 했다. 카이사르 편에 서느냐, 폼페이우스 편에 서느냐. 그는 오래 망설였다. 카이사르는 키케로를 개인적으로 좋아했고, 그가 자기 편으로 오기를 원했다. 키케로는 결국 폼페이우스를 택했다.
- 기원전 49년 루비콘 이후키케로, 폼페이우스 편에 합류. 내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 기원전 48년 파르살루스 패전폼페이우스 패배. 키케로, 카이사르에게 항복하고 사면받음.
- 기원전 46~44년 침묵의 시간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철학 저술에 몰두. 『의무론』, 『노년에 대하여』 등 집필.
- 기원전 44년 카이사르 암살 이후키케로, 다시 정치 무대로. 옥타비아누스와 손잡고 안토니우스에 맞섬.
필리피카이 — 마지막 말
카이사르가 암살된 뒤, 키케로는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그는 카이사르의 부장이었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새로운 독재자가 되려 한다고 판단했다. 기원전 44년부터 43년까지, 그는 안토니우스를 공격하는 14편의 연설을 쏟아냈다 — 『필리피카이(Philippicae)』. 고대 그리스의 웅변가 데모스테네스가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왕을 공격한 연설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필리피카이의 내용키케로는 안토니우스를 공화정의 적, 폭군, 술주정뱅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연설문은 로마 전역에 퍼졌다. 안토니우스는 격분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키케로의 오판키케로는 젊은 옥타비아누스(훗날 아우구스투스)를 이용해 안토니우스를 견제하려 했다. "젊은이는 칭찬받고, 이용되고, 버려져야 한다"고 사적으로 말했다고 전해진다. 옥타비아누스는 이 말을 기억했다. 그리고 안토니우스와 손을 잡았다.
도망치지 않은 사람
기원전 43년,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레피두스가 2차 삼두정치를 결성했다. 세 사람은 각자의 정적 목록을 교환했다. 안토니우스는 목록의 맨 위에 키케로의 이름을 올렸다. 옥타비아누스는 저항했지만 결국 양보했다.
자객들이 키케로의 별장으로 왔을 때, 그는 이미 배를 타고 도망치려다 되돌아온 뒤였다. 가마에 실려 떠나던 중 자객들과 마주쳤다. 플루타르코스는 이렇게 기록한다. 키케로는 가마에서 고개를 내밀어 자객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목이 잘렸다.
"안토니우스는 키케로의 머리와 손을 로마 광장의 연단에 못 박아 전시했다. 한때 그 입에서, 그 손에서 로마를 구한 말들이 나왔던 자리에."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키케로 편
플루타르코스는 이 장면을 담담하게 기록하면서도 안토니우스의 행위를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 중 하나"로 평가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키케로의 글과 말은 그 후로도 오래 살아남았다고.
키케로가 남긴 것
| 분야 | 주요 작품 / 업적 | 의미 |
|---|---|---|
| 철학 | 『의무론』, 『국가론』, 『법률론』 | 그리스 철학을 라틴어로 전수 |
| 수사학 | 『웅변가에 대하여』, 『브루투스』 | 서양 수사학의 교과서 |
| 편지 | 900통 이상의 서한 현존 | 로마 공화정 말기의 생생한 기록 |
| 정치 | 카틸리나 음모 진압, 필리피카이 | 공화정 수호의 마지막 목소리 |
키케로는 검을 들지 않았다. 군대를 이끌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은 2,000년을 살아남았다. 플루타르코스가 그를 영웅전에 넣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위대함은 힘에서만 오지 않는다. 때로는 말에서, 생각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신념에서 온다.
'Books & Insights (북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영웅의 성공과 몰락 - 플루타르코스가 모든 삶에서 발견한 하나의 패턴 (0) | 2026.05.08 |
|---|---|
| Cicero - The Man Who Lived by Words and Died by Them (0) | 2026.05.08 |
| The Vessel of a Conqueror — and Its Breaking Point (0) | 2026.05.08 |
| 정복자의 그릇과 파국 — 왜 두 천재는 같은 방식으로 무너졌는가 (0) | 2026.05.08 |
| Julius Caesar - The Man Who Seized Rome — and Was Killed by It (1) | 2026.05.0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