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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철학 15편 - 『고백록』 원전 읽기 (2): 시간론 (아우구스티누스 3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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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철학 15편 - 『고백록』 원전 읽기 (2): 시간론 (아우구스티누스 3편)

slowblooms 2026. 3. 15.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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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을 이성으로 해부한다 — 아우구스티누스 편 (3편)

『고백록』 원전 읽기 (2): 시간론


"시간이란 무엇입니까? 아무도 나에게 묻지 않는다면, 나는 압니다. 그러나 묻는 자에게 설명하려 하면, 나는 모릅니다."

철학사에서 가장 정직한 문장 중 하나다. 『고백록』 11권 —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론이 시작되는 대목이다.

이 시간론은 단순한 형이상학이 아니다. 신을 향한 영혼의 여정을 설명하는 언어다. 왜 시간론이 『고백록』 안에 있는지, 원전을 읽으면 보인다.


왜 『고백록』에 시간론이 있는가

아우구스티누스가 시간을 묻는 이유는 이것이다.

"신은 영원하다. 그런데 우리는 시간 안에 산다. 영원한 신이 시간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

그리고 더 깊은 질문.

"신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는 무엇을 했는가?"

이 질문이 시간론으로 이어진다. 시간을 이해해야 창조를 이해할 수 있고, 창조를 이해해야 신과 인간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 원전 읽기 — 11권 14장: 시간이란 무엇인가


🇰🇷 한국어

그렇다면 시간이란 무엇입니까? 아무도 나에게 묻지 않는다면, 나는 압니다. 그러나 묻는 자에게 설명하려 하면, 나는 모릅니다.

그런데도 나는 자신 있게 말합니다. 만약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는다면, 과거의 시간이 없을 것이고, 만약 아무것도 오지 않는다면, 미래의 시간이 없을 것이며, 만약 아무것도 없다면, 현재의 시간이 없을 것이라고.

그렇다면 과거와 미래, 이 두 시간은 어떻게 존재합니까? 과거는 이미 없고, 미래는 아직 없는데. 현재도 항상 현재라면, 시간이 아니라 영원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도 오직 지나가기 때문에 시간입니다.


🇺🇸 English

What then is time? If no one asks me, I know: if I wish to explain it to one that asketh, I know not.

Yet I say with confidence, that I know that if nothing passed away, there would not be past time; and if nothing were coming, there would not be future time; and if nothing were, there would not be present time. Those two times then, past and future, how are they, seeing the past now is not, and the future is not yet?

But as for the present, if it were always present, and never passed into time past, truly it should not be time, but eternity. If, then, time present — if it be time — only comes into existence because it passes into time past, how do we say that even this is, whose cause of being is that it shall not be?


📖 원전 읽기 — 11권 20장: 세 가지 현재

아우구스티누스 시간론의 핵심 명제


🇰🇷 한국어

이제 나에게는 분명해집니다. 미래도 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세 시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과거 일들의 현재, 현재 일들의 현재, 미래 일들의 현재라고.

이 세 가지는 영혼 안에 어떤 방식으로 있으며, 다른 곳에서는 나는 보지 못합니다. 과거 일들의 현재는 기억(memoria)이고, 현재 일들의 현재는 직관(contuitus)이며, 미래 일들의 현재는 기대(expectatio)입니다.


🇺🇸 English

It is now plain and clear that neither things future nor things past are. Nor is it properly said, "there be three times, past, present, and future": but perchance it might be properly said, "there be three times; a present of things past, a present of things present, and a present of things future."

For these three do somehow exist in the soul, and otherwise I see them not: present of things past, memory; present of things present, sight; present of things future, expectation. These three are in the soul, and I do not see them elsewhere.


📖 원전 읽기 — 11권 26장: 시간은 영혼의 연장이다


🇰🇷 한국어

내 영혼이여, 내가 시간을 측정하는 것은 당신 안에서입니다. 당신이 지나가는 것들에 의해 나에게 각인된 인상을 측정합니다. 그 인상은 지나가는 것들이 지나갈 때 당신 안에 남아 있습니다. 나는 지나가는 것들 자체가 아니라, 그것들이 당신 안에 남긴 것을 측정합니다.

시간은 연장(distentio)입니다. 그러나 무엇의 연장입니까? 나는 모릅니다. 아마도 영혼 자체의 연장일 것입니다.


🇺🇸 English

In thee, O my mind, I measure times. The impression, which things as they pass by make on thee, remains even when they are gone; this it is which still present, I measure, not the things which pass by to make this impression.

I said that time is nothing else but extension (distentio); but of what thing, I know not; and I marvel, if it be not of the mind itself.


논증 구조 —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론

원전을 읽고 나면 논증의 흐름이 보인다.

[문제 제기]
과거는 이미 없고, 미래는 아직 없다
현재는 순간마다 사라진다
→ 그렇다면 시간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핵심 전환]
시간은 세계 안에 있지 않다
시간은 영혼 안에 있다

[세 가지 현재]
과거 = 현재의 기억 (memoria)
현재 = 현재의 직관 (contuitus)
미래 = 현재의 기대 (expectatio)

[결론]
시간은 영혼의 연장(distentio)이다
→ 시간을 측정한다는 것은
   영혼 안의 인상을 측정하는 것

왜 이것이 기독교 철학에서 중요한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론은 단독으로 끝나지 않는다. 세 가지 방향으로 연결된다.

첫째 — 신의 영원성과의 대비

"신은 영원하다. 영원은 시간의 무한한 연장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상태다. 신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 — 오직 영원한 현재만 있다."

둘째 — 창조론의 토대

"신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는 무엇을 했는가? — 이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다. '전'이라는 것은 시간 개념인데, 시간 자체가 창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신은 시간 안에서 창조한 게 아니라, 시간과 함께 창조했다."

셋째 — 기억론과의 연결

시간이 영혼 안에 있다면 — 기억이 곧 과거 시간의 현재적 존재 방식이다. 이것이 다음 편에서 다룰 기억론으로 이어진다.


→ 다음 글: [아우구스티누스 4편] 『고백록』 원전 읽기 (3): 기억론과 세 주제의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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