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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철학 4편 - 『존재와 본질에 대하여』 원전 읽기 (아퀴나스 2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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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철학 4편 - 『존재와 본질에 대하여』 원전 읽기 (아퀴나스 2편)

slowblooms 2026. 3. 12.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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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을 이성으로 해부한다 — 아퀴나스 편 (2편)

『존재와 본질에 대하여』 원전 읽기


지난 편에서 아퀴나스가 왜 아리스토텔레스를 끌어안았는지, 그리고 안셀무스와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봤다. 이번 편에서는 직접 원전으로 들어간다.

『존재와 본질에 대하여(De Ente et Essentia)』. 아퀴나스가 20대 초반에 쓴 초기작이지만, 그의 형이상학 전체가 압축된 텍스트다. 여기서 도출되는 존재와 본질의 구분이 이후 5가지 신 존재 증명의 토대가 된다.


핵심 개념 먼저

이 텍스트를 읽으려면 세 라틴어 개념을 먼저 잡아야 한다. 번역어로만 읽으면 미끄러지기 쉬운 구분이라, 원어를 함께 기억해두는 게 좋다.

라틴어 의미 쉽게

essentia 본질 "무엇인가" — 어떤 것을 그것이게 만드는 것
esse 존재(함) "있는가" — 실제로 존재하는 행위 자체
ens 존재자 존재하는 것, 있는 것

essentia와 esse의 구분이 핵심이다. 소크라테스의 "인간임"(essentia)과 소크라테스가 "실제로 있음"(esse)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이 질문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 원전 읽기 — 1장: 존재와 본질의 정의


🇰🇷 한국어

철학자(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듯이, 작은 시작에서의 오류는 끝에 가서 큰 오류가 된다. 그런데 존재와 본질은 지성이 가장 먼저 파악하는 것들이므로, 이것들에 관한 무지에서 생기는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는 이 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보편적인 논리적 의도들 안에서 발견되는지를 밝혀야 한다.

존재자(ens)로부터 본질(essentia)이라는 이름이 파생된다. 그러나 존재자는 두 가지 방식으로 말해진다. 첫째는 열 개의 범주들로 나뉘는 것으로서, 둘째는 명제의 진리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 두 가지의 차이는 두 번째 방식으로는 결여나 부정도 존재자라고 불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눈멈이 존재한다거나 부정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첫 번째 방식으로는 어떤 것도 존재자라고 불릴 수 없다. 본질이라는 이름은 이 두 번째 방식이 아니라 첫 번째 방식의 존재자에서 파생된다.

따라서 보에티우스가 말하듯이, 본질은 어떤 것을 존재자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 English

A small error at the outset, as the Philosopher says, leads to a great one in the end. Since being and essence are what the intellect first conceives, we must, in order to avoid the errors that arise from ignorance of these terms, explain what is meant by the terms "being" and "essence" and how they are found in various kinds of things.

The word "being" (ens) is derived from the word "to be" (esse). Being is used in two ways: first, in the way it is divided into the ten categories; second, in the way it signifies the truth of a proposition. The difference between these two usages is that in the second sense, anything can be called a being about which an affirmative proposition can be formed, even if it posits nothing in reality — in this sense, privations and negations are called beings, as when we say that blindness exists. But in the first sense, nothing can be called a being unless it posits something real. Essence is taken from being in this first sense, not the second.

Thus, as Boethius says, essence is that by which a thing is what it is.


📖 원전 읽기 — 4장: 핵심 대목

4장이 전체의 심장부다. 피조물과 신의 존재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 아퀴나스의 신론 전체가 이 대목에서 나온다.


🇰🇷 한국어

이제 우리는 존재와 본질이 단순 실체들 안에서 어떻게 발견되는지 고찰해야 한다.

이것이 복합 실체들과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복합 실체에서는 본질 자체가 존재와 다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본질, 즉 그를 인간이게 만드는 것은 그가 존재하는 것과 동일하지 않다. 만약 그것이 동일하다면, 인간임이 곧 이 인간임이 될 것이고, 소크라테스가 인간인 것처럼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도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지성적 실체들에서도 본질과 존재는 다르다. 그것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스스로 가지는 것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받는다. 존재함(esse)은 본질에 더해지는 어떤 것이다.

그러나 오직 하나의 존재자만이 본질과 존재가 완전히 동일할 수 있다. 그 존재자 안에서는 존재함 자체가 본질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신이다. 신은 순수한 존재함(ipsum esse subsistens) 자체이다.


🇺🇸 English

We must now consider how essence is found in separate substances — in the soul, in intelligences, and in the First Cause.

Everyone agrees that God is entirely simple and has no composition whatsoever. But in all other substances there is a composition of essence and existence (esse). The essence of Socrates — that which makes him a man — is not identical with his act of existing. If it were, then to be a man would be to be this particular man, and Socrates and Plato would be one and the same insofar as both are men. But this is clearly impossible.

Therefore, in all created substances, essence and existence are distinct. They do not have existence from themselves but receive it from another — from God. The act of existing (esse) is something added to the essence.

But there can be only one being in which essence and existence are perfectly identical. In that being, the very act of existing is the essence. And this is God — ipsum esse subsistens — Subsistent Being Itself.


원문에서 주목할 것 — 소크라테스의 예

아퀴나스가 소크라테스를 예로 든 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여기에 논증의 핵심이 들어 있다.

소크라테스의 본질(essentia) = "인간임" — 이성적 동물이라는 속성들의 묶음

소크라테스의 존재(esse) = 소크라테스가 실제로 이 세계에 있다는 사실

이 둘이 같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간임" 자체가 곧 "있음"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인간이라는 본질을 공유하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히 말이 안 된다.

따라서 모든 피조물에서 본질과 존재는 다르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존재는 본질 바깥에서 주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주는 존재는? 본질과 존재가 동일한 — 즉, 존재 자체인 —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아퀴나스는 그것을 ipsum esse subsistens, "스스로 존재함 자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것이 신이라고 말한다.


→ 다음 글: [아퀴나스 3편] 논증 해부 — 존재와 본질의 구분이 신 존재 증명으로 이어지는 방식, 그리고 안셀무스와의 결정적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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